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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인의 인문학]/ 철학

[중세] 마키아밸리

[중세]

 

 

마키아밸리

 

[정치철학,현실주의]

 

마키아밸리는 원래 '하룻밤에 읽는 서양사상'에는 빠져있다. 하지만 꼭 한번 알고 가는게 좋을것 같아서 정리함.

 

1) 군주론

2)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국가의 성공을 위해 도덕에 얽매이면 안된다.

3) 통치자는 반역을 꾀하는 자들에게는 사나운 맹수의 모습과

    덫과 함정을 빠르게 알아채는 여우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4) 통치자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5) 통치자는 피지배자가 통치자를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삼가토록 노력해야 한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보고 있자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환상을 말하던 미실과 희망을 말하던 덕만공주의 원탁 토론이 참 인상 깊었다.

 

미실/ 그래서 신권을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덕만공주/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미실/ 공주님, 세상은 종으로도 나뉘지만, 횡으로도 나뉩니다.


덕만공주/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인, 고구려인, 신라인. 또 신라 안에서는

공주님을 따르는 자들, 이 미실을 따르는 자들.

하지만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딱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공주와 저는 같은 편입니다. 우린 지배하는 자입니다.

미실에게서 신권을 뺏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


덕만공주/ 허면, 언젠가 다시 빼앗길 수도 있겠지요.


미실/ 그게 두려워 버리시는 겁니까?


덕만공주/ 버리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미실/ 그게 버리는 겁니다. 그걸 버리고 어찌 통치를 하려 하십니까?


덕만공주/ (그런....가? 버리는... 것인가? 통치를 할 수 없는 것인가?)


미실/ 예, 공주님. 우린 정쟁을 하고 있습니다. 정쟁에도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규칙 위반입니다. 무엇으로 왕권을 세우고, 조정의 권위를 세우겠습니까?


덕만공주/ (무엇으로....내... 권위를 세우느냐?)


미실/ 무엇으로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는 겁니까?


덕만공주/ (무엇으로 다스리느냐?....)


미실/ 말씀을 해보세요. 무엇이냔 말입니까?


덕만공주/ 진실이요.


미실/ 진실......무슨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새로운 천신황녀라고 공주님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진실을요. 난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내겐

신비스런 능력이 없다. 이런 진실이요?


덕만공주/ 격물이란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미실/ 그래서요?


덕만공주/ 새주께서는, 진실을 밝히려는 격물을 가지고, 마치 새주께서 천기를 운행하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미실/ 백성은 환상을 원하니까요. 가뭄에 비를 내리고 흉사를 막아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원합니다. 그 환상을 만들어 내야만 통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덕만공주/ 아니요. 백성은 희망을 원하는 겁니다.


미실/ 백성의 희망?... 공주님! 백성이라는 것이, 군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십니까?


덕만공주/ (무서워? 미실이 무서워하는 게 있어?)


미실/ 군중의 희망, 혹은 욕망,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시지요?


덕만공주/ 예. 전 무섭지 않습니다. 적어도, 백성이란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원하는 것이지, 환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미실/ 백성은 왜 비가 오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일식이 어찌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비를 내려주고, 누군가 일식이란 흉사를 막아주면

그만인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덕만공주/ 그건,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실/ 예,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덕만공주/ 백성이 책력을 알면, 스스로 절기를 알게 되고, 스스로 파종을 할 때를 알게 됩니다.

그리되면, 비가 왜 오는지는 몰라도, 비를 자신들의 농사에 어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 발짝씩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게 백성입니다.


미실/ 안다는 건, 지혜를 갖는다는 건,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곤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덕만공주/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합니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 것입니다.


미실/ (설마....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덕만공주/ (이게....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맞는 거야?)


미실/ 공주님! 미실은 백성들의 환상을 이야기 하고 있고, 공주께서는 백성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희망이라는 것이, 그 꿈이라는 것이, 사실은 가장

잔인한 환상입니다. 공주께서는 이 미실보다 더 간교합니다.


덕만공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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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마키아밸리 군주론을 보면서 떠오른 대사 한마디

 

"처벌은 폭풍처럼 포상은 조금씩 그것이 지배의 기본입니다 "

 

내용을 정리하면

 

 

미실의 입장은

 

 백성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 떼를 쓰는 아이, 알려고 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존재이다

그저 흉사를 막아주면 그걸로 만족하는 존재이다.

영적인 존재가 비를 내려주는 환상을 주면 만족하는 즉물적인 존재.

그러므로

미실 자신은 백성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었을 뿐이며, 오히려 백성이 미실을 이용한 것이라 한다.

얼토당토안한 희망을 주는 것은 고통을 주는 환상이라 한다.

 

덕만공주의 입장은

 백성은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이다. 즉물적인 존재임을 부정하며 그건 알 수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백성이 진실로 원하고자 한 것은 환상이 아니라 희망이며 진실이다. 

 

 두 입장의 차이는 백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말하자면 두가지의 백성이 존재한다.

앎을 귀찮아 하는자, 앎을 귀찮아하지 않는자

 

현재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점이 있다.

현재 사회에서는 백성이 3가지로 나뉜다.

앎을 귀찮아 하는자, 앎을 귀찮아하지만 알려고 노력하는자, 앎을

(근데 이제 진짜 안다는것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것 같다. 과도한 경쟁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또, 안다는것=공부=학창시절의 고통 이렇게 이어져서 정말 조금만 복잡해도 극도로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현대사회는 더욱이 농사지식만 알면 되던 옛날과는 다르다. 굉장히 다양한 산업분야가 존재하고

산업분야는 곧 우리의 소비분야이며 소비자인 백성(국민)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올바른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들도 너무 많은 세상이다.

죽기전까지 노력해도 다 알수 있을까?

 

1번과 같은 집단만 있다면 미실의 방법이 통할것이고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허나 현재와 같이 3분류의 사람이 있다면

군주의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 해야 하는 걸까?

백성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것이 바람직 한 걸까?

 

내가 만약 군주라면,

앎을 귀찮아 하는자를 위할 필요는 없다. 현재 사회에서 환상을 보여주려하면 미친사람 취급을 받을거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을 위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앎은 정보에 의해 충족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정보를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보를 강요할 필요는 없고, 그저 백성이 알려고 할때 정보를 찾으려 하다가 지치지 않게 쉽게 정보를 

이용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하고 잘못된 정보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기득권층이 정보에 대해 접근하는 것을 굉장히 복잡하게 꼬아 놓고 애매하게 하여 장벽을 높게 해놓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의 입장에서는 현재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앎을 귀찮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것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자신이 살면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잘 알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앎을 포기하는 것은 즉물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고

현재 사회에서 같이 호흡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 될 뿐이다. 앎을 두려워, 귀찮아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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